살면서 경찰 조사를 받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은 평생 경찰서 문턱조차 밟을 일이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예측불허입니다.
사소한 시비, 오해로 인한 고소, 혹은 참고인 조사 등 우리는 언제든 수사기관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때 많은 이들이 범하는 치명적인 착각이 있습니다.
“나는 죄가 없으니, 솔직하게 말하면 다 이해해 줄 거야.”
하지만 냉정한 법의 세계, 특히 수사 과정에서 ‘솔직함’과 ‘무방비’는 전혀 다른 결과 값을 낳습니다.
오늘은 실무상 경험을 바탕으로 수사관이 피의자의 유죄를 확신하게 만드는 결정적 순간 3가지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일반인이 반드시 알아야 할 수사 대응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법을 심층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1. 인간의 기억 vs 법적 기록: “그럴 수도 있다”의 함정

우리의 기억은 불완전합니다.
1년 전, 아니 당장 지난주 술자리에서 내가 했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대화에서 우리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그랬을 수도 있어요”라는 화법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나의 기억 오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겸손하고 유화적인 태도입니다.
하지만 수사 현장(Police Interrogation) 특히, 경찰조사에서 이 화법은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 정의(Definition): 수사관에게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은 ‘가능성’이 아닌 ‘미필적 인정’으로 해석됩니다.
- 인과(Cause & Effect): 당신이 이 말을 뱉는 순간, 수사관이 작성하는 피의자 신문 조서에는 “피의자는 범행 사실을 일부 인정함”이라는 문구가 적힙니다. 이 한 줄은 훗날 재판에서 판사에게 “피고인이 수사 단계에서는 혐의를 부인하지 않았다”는 강력한 심증을 심어주게 됩니다.
따라서 수사 과정에서는 답변을 이분법(Dichotomy)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명확한 사실은 “그렇다/아니다”로,
조금이라도 기억이 흐릿한 부분은 추측을 배제하고 “기억나지 않습니다” 혹은 “모르겠습니다”로 답해야 합니다.
애매한 친절함이 당신을 유죄로 이끄는 첫 번째 단추임을 명심하십시오.
2. 진술의 일관성: 사실과 거짓을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
수사관들이 가장 예리하게 파고드는 지점이 바로 ‘진술의 번복’입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 앞뒤 상황을 꿰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설정을 추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역이용하는 것이 수사 기법의 핵심입니다.
- 비교(Comparison):
- 진실을 말하는 사람: 핵심 줄기(Core Fact)는 변하지 않습니다. 시간이나 장소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는 있지만, 사건의 본질적인 흐름은 일관됩니다.
- 거짓을 말하는 사람(혹은 당황한 사람): 수사관의 추궁에 압박감을 느껴 순간을 모면하려 합니다. “아,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라…”라며 말을 바꾸거나, A 장소라고 했다가 B 장소라고 정정합니다.
문제는 ‘당황해서’ 말을 바꾼 억울한 사람도 수사관의 눈에는 ‘거짓말쟁이’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디테일이 흔들리면 수사관의 모드는 ‘단순 확인’에서 ‘혐의 입증’으로 전환됩니다.
즉, 당신의 말에서 빈틈을 찾아내 유죄의 증거를 끼워 맞추는 확증 편향의 단계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사를 받기 전, 자신의 기억을 타임라인별로 정리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만약 조사 도중 기억이 헷갈린다면, 섣불리 대답하기보다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므로 확인 후 추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3. 반성의 역설: 경찰 조사 중 사과가 자백이 되는 순간
가장 안타깝고도 빈번한 실수가 바로 “반성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는 말입니다.
한국 사회는 ‘정(情)’과 ‘예의’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경찰서라는 위압적인 공간에 가면,
사건의 시시비비를 떠나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도의적인 사과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법리적으로 ‘반성’은 ‘공소 사실(범죄 혐의)을 전부 인정함’과 동의어입니다.
- 대조(Contrast):
- 사회적 사과: “상황이 이렇게 되어 유감이다”, “불편하게 해 드려 죄송하다” (도덕적 차원)
- 법적 반성: “내가 범죄를 저질렀음을 시인하며, 처벌을 달게 받겠다” (법적 차원)
아직 혐의가 입증되지도 않았는데 경찰에게 선처를 구하며 반성문을 쓰거나 사과를 하는 것은,
축구로 치면 경기 시작 5분 만에 자책골을 넣는 것과 같습니다.
조서에 “피의자는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취지로 진술함”이라고 기록되는 순간,
이를 뒤집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경찰은 판사가 아닙니다.” 수사관은 당신의 죄를 밝혀내는 사람이지,
당신의 사정을 봐주고 형량을 깎아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짜 반성은 혐의가 명백히 밝혀진 후, 법정에서 판사에게 전략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사 단계에서의 섣부른 사과는 겸손이 아니라 ‘자백’입니다.
결론: 수사는 ‘진실 게임’이 아닌 ‘증명 게임’이다

많은 이들이 수사 과정을 영화처럼 생각합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면 형사가 그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형사 절차는 차가운 서류와 증거,
그리고 진술의 논리로만 굴러가는 ‘증명 게임’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실수(추측성 답변, 진술 번복, 섣부른 반성)는
모두 ‘준비되지 않은 피의자’가 겪는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특히 성범죄나 사기 등 진술의 비중이 절대적인 사건에서 이 3가지 실수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만약 경찰 출석 요구를 받았다면, 다음의 원칙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 침묵은 금이 아니라 생명줄이다: 불확실하면 입을 다무십시오.
- 기록은 영원하다: 당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조서라는 문서로 박제되어 대법원 판결까지 따라갑니다.
- 전문가의 조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병원에서 MRI를 찍듯, 법률 전문가와 사전에 리스크를 진단하고 조사 시뮬레이션을 거치는 것은 당신의 인생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무지(無知)가 죄는 아니지만, 수사 과정에서의 무지는 당신을 죄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칼럼이 당신의 권리를 지키는 작은 방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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