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출발 공간, 마주함

2026.01.15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지우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그 ‘순간’은 단순히 부끄러운 기억을 넘어,

평생 일궈온 삶의 궤적을 송두리째 흔드는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른바 ‘전과자 낙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특히 예상치 못한 범죄 혐의를 받게 된 직후,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후회를 넘어선 ‘심리적 마비’ 상태에 가깝습니다.

전과자 낙인 1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는 강렬한 절망감은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때로는 자포자기나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더 큰 비극으로 등 떠밀기도 합니다.

범죄심리상담사로서 현장에서 수많은 혐의자를 만날 때마다 그들의 눈동자에 서린 ‘막연한 공포’를 목격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행동의 과오’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곧 ‘인간 존재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심리적 벼랑 끝에 선 분들이 어떻게 다시 땅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지,

회복을 위한 심리학적 로드맵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1. 두려움의 객관화: ‘막연한 괴물’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수사가 시작되면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협받는다고 느껴 비상 상태에 돌입합니다.

이때 발생하는 공포는 형체가 없습니다.

“주변에서 알면 어쩌지?”, “감옥에 가면 내 인생은 끝이야” 같은 파국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두려움의 객관화’입니다.

실체가 없는 괴물은 상상 속에서 무한히 커지기 마련입니다.

지금 당장 종이를 꺼내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구체적인 걱정들을 적어보십시오.

  • 구속에 대한 실질적인 두려움인가?

  • 직장을 잃게 될 것에 대한 걱정인가?

  • 아이에게 실망을 주는 것이 두려운가?

공포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명(Labeling)하는 순간,

그것은 나를 잡아먹는 괴물이 아니라 ‘내가 관리하고 대응해야 할 문제’로 바뀝니다.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부의 상실과 변화’가 생기는 것임을 인지하는 것,

그것이 정서적 안정의 시작입니다.

2. 인지적 전환: 나를 파괴하는 ‘수치심’에서 나를 고치는 ‘죄책감’으로

범죄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 ‘수치심’과 ‘죄책감’의 구분입니다.

  • 수치심: “나는 나쁜 인간이다” (자아 전체에 대한 부정)

  • 죄책감: “나는 나쁜 행동을 했다” (행위에 대한 반성과 책임)

많은 분이 수치심에 함몰됩니다.

자기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되면 인간은 자신을 숨기거나

오히려 타인에게 공격적으로 변하는 방어 기제를 작동시킵니다.

“어차피 난 쓰레기니까”라는 자책은 진정한 반성을 가로막고 포기를 유도합니다.

우리는 ‘행위와 존재를 분리’해야 합니다.

당신의 행동은 명백히 잘못되었고 법적 책임은 엄중히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라는 존재의 근원적 가치까지 소멸한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를 ‘구제 불능’으로 낙인찍지 마십시오.

당신의 본질을 보호해야만,

비로소 내 행동이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심리적 여유가 생깁니다.

건강한 죄책감이야말로 잘못을 바로잡고 사회로 돌아오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3. 행동적 대응: 상실된 삶의 통제권 되찾기

사법 절차가 시작되면 많은 이들이 무력감에 빠집니다.

수사관과 판사의 손에 내 운명이 결정된다는 생각에 압도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력감은 심리적 붕괴의 주범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심리적 통제권(Locus of Control)’을 회복해야 합니다.

비록 최종 결과는 사법 기관이 결정할지라도,

그 과정에서의 노력은 오롯이 당신의 몫입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십시오.

전과자 낙인 3
  • 진심을 담은 반성문을 작성하십시오.

  • 피해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합의 방안을 강구하십시오.

  • 사건의 원인이 분노 조절이나 중독에 있다면 전문가를 찾아 치료를 시작하십시오.

스스로 삶을 수습하기 위해 리스트를 만들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다시 ‘유능감’을 회복합니다.

“나는 여전히 내 삶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감각은 형사 절차를 견디게 하는 버팀목이 되며,

재판부에도 진정성 있는 반성의 증거로 전달될 것입니다.

4. 미래 설계: 처벌을 ‘종말’이 아닌 ‘재기 비용’으로 정의하기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리프레이밍(Reframing)입니다.

처벌을 인생의 막다른 길(Dead-end)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처벌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책임의 이행’과 ‘사회적 부채의 상환’에 있습니다.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처벌 이후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처벌을 성장을 위한 통증으로 받아들이십시오.

형량의 숫자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 기간을 삶을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정의하십시오.

경제적 자립, 가족과의 관계 회복, 재발 방지를 위한 환경 구축 등을 구체적으로 설계하십시오.

처벌을 ‘새 출발을 위해 지불하는 값비싼 비용’으로 여기는 순간,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한순간의 실수는 삶의 커다란 오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점 하나가 도화지 전체를 검게 물들이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당신의 인생이라는 작품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하십시오.

두려움을 기록하고, 잘못을 인정하되 당신 자신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책임 있는 행동으로 통제권을 되찾고, 지금의 시련을 새로운 도약의 밑거름으로 삼으십시오.

그것이 당신 자신을 지키는 길이며, 상처 입은 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진정성 있는 속죄의 시작입니다.

자포자기하지 마십시오.

다시 일어설 기회는,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용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한국준법윤리교육원 김우혁 Head Coach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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